나는 살아가며 항상 사진을 찍는다.
각 잡고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을 때도 있고,
스마트폰으로 순간순간 필요한 이미지들을 찍어 저장하기도 한다.
카메라는 스마트폰까지 합하면 총 3대를 가지고 있다.
카메라도 저렴하지는 않은 라이카 카메라다.
그러나 가끔 일이 바빠서 몇 주 동안
카메라에 손도 못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카메라를 산 게 과연 잘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또 오랜만에 출사를 나가
좋은 사진을 몇 장 건지면,
“그래 이래서 내가 카메라를 샀지” 하는 만족감이 드는
이 루틴이 계속해서 반복되곤 한다.
문득, 요즘 책상 옆에 잠들어 있는
내 카메라를 바라보다가
“나는 왜 카메라를 좋아하는가?”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해보았다.
먼저, 카메라와 나의 첫 만남으로 돌아가 봤다.
고등학생 때였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지인에게 받았다고 하신
보급형 캐논 DSLR을 들고 오셨다.
모델명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카메라 브랜드에 대해 모르기도 했고
브랜드에 영향받지 않는 순수함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저 렌즈와 셔터가 달린 기계를 다룬다는 생각에
설레고 즐거웠을 뿐이었다.
조리개, 셔터스피드 등등 카메라의 속성도 몰랐고,
그것들이 결과물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동 모드로 사진을 막 찍어댔던 것 같다.
그렇게 그 캐논 카메라를 성인이 되어
군대 전역 이후까지 사용을 했다.
출사를 목적으로 나간 적은 없었고,
여행을 떠날 때만 카메라를 들고 가서 이것저것 찍었다.
화이트 밸런스, 노출을 몰랐던 때이니
그냥 셔터만 눌러서 사진을 담아 놓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마치 현상하지 않은 필름카메라처럼
메모리카드에 담겨 있었다.
카메라에 대한 경험이 있는 비교적 최근이 돼서,
그때 찍었던 결과물들을 라이트룸을 통해 현상해 보았는데,
초심자의 행운일까,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물들이 담겨있었다.
이 캐논 친구를 데리고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등반도
함께 했었다.
짐도 많고 무거웠지만,
평생 몇 번이나 갈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던지,
그 풍경을 내가 남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해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첫 카메라였던 캐논은,
히말라야 등반 후 고장이 나서 작별하게 되었다.
이후 대학졸업, 취업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며,
카메라에 대한 관심은 마음속 깊이 잠들게 되었다.
그리고 첫 직장에 취직하고 첫 월급을 받은 날,
라이카 D-lux 7을 샀다.
라이카를 선택한 이유? 사실 크게 없었다.
그냥 라이카를 쓰고 싶었는데,
가장 저렴한 라이카라 샀다.
"스마트폰보다야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겠지"
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 첫 번째 라이카인 디룩스 7은
나와 함께 많은 추억을 쌓아갔다.
일상생활, 데이트, 여행 등등
나의 삶 대부분을 함께 하며
나의 일상 그리고 특별한 순간들을 기록해 주었다.
줌도 되고, 4K 영상 촬영도 되는 디룩스 7은
소형 카메라이지만 결과물도 상당히 준수했다.
그렇게 디룩스로 다양한 피사체와 풍경을 담고,
보정에 대한 개념과 경험도 쌓아나갔다.
디룩스 7은 무엇보다 작은 크기 덕에
외출 시 가방에 넣어 데리고 다니기가 아주 편했다.
그래서 그만큼 사진도 많이 찍게 된 것 같다.
라이카 디룩스 7을 한 3년쯤 사용했을 때,
크롭 바디에 대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건 사실 기종변경 욕구에 대한
나의 합리화일 뿐이었지만.
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떨까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나인지라
좋은 라이카 Q2 매물이 나왔을 때,
퇴근 후 1시간 동안 운전해서 데려왔다.
라이카 Q2를 조수석에 태워 집으로 돌아오던 밤,
나의 카메라 인생에서 뭔가 이룬 느낌이었다.
살면서 대부분의 사람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내가 원하는 특정한,
그것이 아니면 안 되는 어떤 특정한 물건 혹은 모델을
그대로 갖게 되는 경험은 아주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이카 Q2도 내가 목표로 하고
손에 넣기까지는 5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구매할 용기가 생기기까지는 말이다.
어쨌든, 내가 목표로 한 딱 그 모델을 손에 넣게 되어
기분이 너무도 좋았다.
설레는 마음과 함께
"매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들고 다녔다. 3일 동안 말이다.
라이카 Q2도 콤팩트 카메라임에도 불구하고,
디룩스 7에 비해 상당히 무거웠다.
그리고 렌즈도 상당히 두꺼운 단렌즈라,
작은 가방에 들어가지가 않았다.
이런 무게와 불편함은
나에게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는 날을 줄여주었지만,
동시에 나로서 하여금 사진을 더욱 진지하게 대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물리적인 무게 때문일까,
아니면 가격의 무게 때문일까,
디룩스 7을 들고 있을 때와 Q2를 들고 있을때 각각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시각부터가 달라졌다.
디룩스 7을 들고 있을 때는
멀리 찍고 싶은 피사체가 있으면,
줌을 땡겨서 담곤 했다.
이것저것 찍기에도 부담이 없으니
셔터를 누르는 빈도도 높았고
그만큼 좋은 결과물의 농도는 상대적으로 옅었던 것 같다.
하지만, Q2는 달랐다.
뭐랄까, 조금은 묵직한 Q2를 손으로 잡으면
셔터 버튼을 함부로 누르고 싶지 않아 졌다.
1장당 약 80메가의 높은 파일 용량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단렌즈이기 때문에
내가 찍고 싶은 피사체 혹은 풍경을 발견해도
줌을 할 수가 없으니
그것에 최대한 가까이 감으로써
피사체와 카메라 렌즈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를 줄이게 되었다.
이는 나와 찍고자 하는 대상의
어떤 무언의 소통을 증가시켜 주었고,
그 덕분에 사진을 찍을 때면
카메라의 이미지 프로세싱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내 머릿속에서 몇 번의 연산을 거치게 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스냅사진을 제외하곤,
뷰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나의 현재 생각과 의도가 잘 표현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면
셔터버튼에서 과감히 손가락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 순간을 그냥 눈으로 담고 기억했다.
이는 자연스레 만족스러운 결과물의 빈도를 높여주었고,
그것은 더 나아가 나에게 어떤 특별한 만족감을 선사해 주었다.
그리고 '목적'을 가진 날에만 카메라를 들고나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카메라는 내 책상 옆에 놓여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지게 되었는데, 이것마저 참 좋았다.
비유를 할 만한 것은 없지만,
굳이 비유를 해보자면 조립하지 않은 레고 박스,
결혼식 갈 때만 가끔 꺼내는 샤넬가방, 같달까.
꼭 내가 카메라를 사용을 하지 않더라도,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걸 들고 가라앉은 차분한 마음으로
피사체를 담거나 혹은 놓아주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그 상상만으로도 이미
나의 창작 욕구는 어느 정도 충족이 되고
행복감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나와 나의 세 번째 카메라인 라이카Q2가
함께 써 내려가고 있는 나의 기록이다.
오래전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의 행복도는 본인이 원했던 일이
이루어진 그 순간부터 하향하기 시작한다고.
어떤 일에 대한 기대 자체가
그 일의 이루어짐 그 자체보다
행복한 순간이 있는 것이다.
바쁜 삶 속에서, 카메라는 있는데 찍을 여유가 없다면,
혹은 카메라 권태기가 온 것 같다면,
오늘은 어딘가에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카메라를 꺼내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놓고,
카메라를 처음 만난 그 순간을 떠올리는 건 어떨까?
분명 새로운 감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는 카메라로써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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