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생활을 시작한 지 1년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집에서 물고기를 어항에 키우는 것을
이쪽 세계에서는 '물생활'이라고 부른다.
특이하게도 다른 취미와는 달리 물고리를 키우는 취미는
'생활'이 붙어있는데, 그 이유는 직접 물고기를 키워보면 알게 된다.
어항을 운영하는 것은,
하나의 작은 생태계를 만드는 일일뿐만 아니라,
나의 생활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물생활이 찾아온 건 약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한 지인의 집에 오랜만에 놀러 갔는데,
못 본 사이에 집에는 엄청난 수의 물고기와 어항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손에는 베타 한 마리가 쥐어져 있었다.
그 날 전까지만 해도, 내가 물고기를 키우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뭔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날, 내 가슴은 머리를 이겼다.
그렇게 베타라는 물고기를 집으로 데려온 첫날 밤,
나는 본격적으로 어항의 세계로 빠지게 되었다.
일주일 만에 2자 어항을 구매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수초와 물고기들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수초의 성장에 좋다는 고압 이산화탄소도 넣었다.
그 다음날 퇴근을 하고 집에 왔는데,
물고기 수십 마리가 용궁을 가 있었다. (죽었다)
조명이 고장 나서 수초가 광합성을 하지 않아,
짙어진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물 생활을 처음으로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겐 아직 살아남은 물고기들을 있었고,
나는 그 친구들을 계속해서 키워내야 했다.
그 후, 큰 사고 없이 내 어항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다.
레이아웃도 바꾸어 보고, 수초도 계속 변경해 가며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나만의 어항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끝나지 않는다.
물 생활은 우리의 삶과 참 닮아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서 한없이 달려가지만, 그것을 달성한 순간
그 목표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다음의 목표를 향해 다시 질주를 시작한다.
결과는 즐거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자 목적 그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그건 물 생활에도 적용이 된다.
잠시 이야기가 샜지만,
여기까진 나의 물 생활 입문기를 이야기해 보았다.
지금부터는 물 생활, 정확히는 '물 멍'이 나에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물 멍.
물을 보면서 멍 때리기의 줄임말이다.
뇌의 휴식에 '멍 때리기'가 좋다는 정보가 알려지며
탄생한 신조어다.
세상엔 다양한 멍 때리는 방법들이 있지만,
나는 물멍이 멍을 때리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쨍한 조명, 높은 채도의 수초와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1초도 쉬지 않고 각자의 템포에 맞게 움직이며,
'어항'이라는 무대 안에서 24시간 오케스트레이션을 만들어낸다.
내가 해야 하는 건,
어항 앞에 가만히 앉거나 누워
눈으로 보고 싶은 장면을 쫓는 것뿐이다.
어항의 풍경을 감상할 때에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필요가 없다.
몸에 긴장이 풀리며, 아름다운 생명체들과
내가 직접 창조한 생태계의 아름다움이 심장을 파고든다.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도시의 사회가 아닌,
머나먼 자연 속 호수 안에 있는 것이다.
내가 주로 어항 앞에서 물멍을 하는 시간은
퇴근 후 밤이다.
바쁜 사회에서의 역할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따뜻한 샤워로 몸에 붙은 밖의 먼지와 잡생각들을 1차적으로 제거한 후
냉장고에서 시원한 탄산 수 한 잔을 꺼내든다,
차분한 재즈 혹은 클래식을 크게 틀고 어항 앞에 앉는다.
그리고 한 없이 평화로운 어항을 그저 바라본다.
잔잔한 물결 속 간간히 싸우는 물고기들이
어항 속에 적절한 활기를 불어넣는다.
30초 정도 멍을 때리면, 내 몸에 황홀감이 돌기 시작한다.
그 순간 다른 것은 필요 없다.
나, 음악, 어항 이 3개가 어우러져 엄청난 행복감을 끊임없이 발산한다.
그 순간, 완벽하지 않아 보이는 내 어항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인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내가 키운 나만의 생태계가 말이다.
물멍은 단순히 좋은 감정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부정적인 감정들을 해소시켜주기도 한다.
물멍을 하다 보면,
물속의 차분한 자연이 나와 동기화되어,
다소 터프한 사회에서 생긴 다양한 고민, 걱정,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평화 속에서 물고기들과 함께 잠에 든다.
물 생활의 꽃이라고 생각하는 이 '물멍'은
나의 스트레스를 녹여주고 진정한 휴식을 선물해 주는
내겐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다.
그러나, 하루의 이 짧은 물멍을 위해
어항의 컨디션을 유지시키는 일은
그렇게 쉽고 편한 일이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며칠에 한 번씩 해야 하는 물갈이, 물고기 컨디션 체크,
이끼 관리, 여과기 관리, 물온도 관리 등
물멍을 즐기는 시간의 몇 배로 관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래서 물 생활이 '생활'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그 힘든 과정이 모두 보상될 만큼
물멍이라는 행위가 주는 행복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추상적이고 좋다.
지친 삶의 한가운데 있다면,
물멍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사는 이유.